[사진: 셔터스톡] 디지털투데이 황치규 기자] 그동안 소프트웨어 판에서 큰소리 좀 치려면 분야 가리지 않고 모든 기업들에서 쓸 수 있는, 이른바 '호리젠탈'(horizontal)형 제품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 대세론으로 통했지만 요즘 분위기는 좀 다르다. 비바 시스템즈, 프로코어(Procore), 토스트(Toast ) 등 특정 분야에서 쓰는, 이른바 버티컬(vertical) SaaS를 앞세워 상당 규모로 몸집을 키운 회사들이 늘면서 소프트웨어 시장에서 '버티컬'에 대한 관심이 점점 커지는 모양새다. 제약 분야 소프트웨어를 제공하는 비바는 2013년 20억달러 가치에 상장했고 현재 기업 가치는 260억달러에 이른다. 건설용 SaaS를 주특기로 하는 프로코어와 레스토랑용 SaaS에 집중하는 토스트도 지난해 각각 85억달러, 200억달러 가치에 상장해 큰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상장은 하지 않았지만 배관공이나 전기기사들이 쓸 수 있는 SaaS를 제공하는 서비스타이탄(ServiceTitan)도 중량감 있는 버티컬 SaaS 회사들 중 하나로 통한다.
프로토콜에 따르면 서비스타이탄 공동 창업자인 바헤 쿠조얀(Vahe Kuzoyan)은 배관공용 버티컬 SaaS 사업을 시작할 계획은 없었다. 하지만 아버지가 쓰는 배관 소프트웨어가 낙후된 것을 보고 대안을 찾아봤는데, 쓸 만한 게 안보이자 직접 만들기로 결정한 것이 서비스타이탄 창업으로 이어졌다. 서비스타이탄 회사 가치는 95억달러 규모로 알려져 있다. 유니콘을 훌쩍 뛰어 넘어 데카콘 등극을 눈앞에 두고 있다. 서비스타이탄이 주력하는 야외 근무자들을 위한 소프트웨어는 그동안 벤처 투자자들이 간과한 시장이었다. 성장에 목마른 벤처 투자자들은 특정 산업에 초점을 맞추는 비즈니스 모델은 한계가 있다고 봤다고 프로토콜은 전했다. 하지만 비바, 프로코어, 토스트, 서비스타이탄 등과 같은 버티컬 SaaS 회사들이 급성장하면서 호리젠탈(horizontal)로 가야 '대마'가 될 수 있다는 고정관념은 흔들리는 모습이다.
벤처투자 회사(VC) 베세머 벤처 파트너스의 탈리아 골드버그 파트너는 "버티컬 SaaS 시장, 적어도 버티컬 SaaS에 대한 투자자 관심은 지난 몇 년 간 크게 증가했다"면서 "CRM 분야에서 세일즈포스는 30% 가량 시장 점유율을 보유하고 있지만 버티컬 소프트웨어 시장에선 50% 이상 점유율을 가질 수 있다"며 버티컬의 잠재력을 부각했다. 버티컬 소프트웨어 업체가 높은 점유율을 가질 수 있는 것은 대형 소프트웨어 회사들보다 특정 분야를 둘러싼 복잡성과 문제들 잘 이해하고 제품을 개발한다는 것에 있다. 프로토콜은 "레스토랑, 헬스케어, 건설, 금유 서비스 같은 분야가 특히 그렇다. 이들 분야 고객들은 빠르게 바뀌는 규제 환경, 복잡한 작업 프로세스, 고유한 비즈니스 모델에 맞는 소프트웨어를 원하고 있지만 전통적으로 대형 소프트웨어 업체들은 여기에 신경을 쓰지 않았다"고 전했다.
이 대목에선 크리스 콤파라토(Chris Comparato) 토스트 CEO도 할 말이 많다. 그에 따르면 레스토랑 업계는 세계에서 가장 거대한 산업들 중 하나지만 기술 회사들로부터 충분한 서비스를 받지 못했다. 그러다 보니 다른 분야 기업들을 위해 만들어진 소프트웨어를 가져다 쓰거나 수작업에 의존해야 했다. 프로토콜은 콤파라토 CEO를 인용해 "레스토랑은 수동 워크플로 및 비즈니스 복잡성을 인식하지 못하는 일반적인 소프트웨어를 제공하는 업체들에게 시달려왔다"면서 버티컬 SaaS들은 특정 고객들이 필요로 하는 걸 정확하게 제공함으로써 이들 문제 중 많은 것들을 해결할 수 있다고 전했다.
영업 및 고객 서비스 측면에서도 버티컬 SaaS 회사들은 범용 소프트웨어 회사들과 비교해 경쟁력이 있다는 평가다. 토스트의 경우 직원들 중 3분의 2 정도가 레스토랑 산업에서 일한 경험이 있다. 서비스타이탄과 프로코어 역시 무역과 건설 분야 경험이 있는 상당수 직원들을 보유하고 있고, 이것은 거대 클라우드 회사 직원들은 하기 힘든 방식으로 고객 질문과 문제들으 해결하는 것을 가능케 한다고 프로토콜은 전했다. 버티컬 소프트웨어를 둘러싼 판이 커지면서 마이크로소프트, 세일즈포스, 구글 같은 대표적인 호리젠탈형 SaaS 회사들의 버티컬을 주목하는 모습이다. 특정 분야에 집중하고 또 집중하는 스타트업들과 경쟁하려년 해당 분야에 대한 전문성을 보다 키울 필요가 있다는 판단에 따른 것으로 풀이된다.
대형 테크 회사들의 공세는 기존에 자리를 잡은 버티컬 SaaS 회사들의 미래를 위협하게 될까? 두고 봐야 알겠지만 서비스타이탄, 프로코어, 토스트 등은 나름 자신감이 있어 보인다. 프로토콜을 보면 이같은 자신감의 밑바탕에는 대형 회사들은 특정 산업에 제대로 집중하는 것이 구조적으로 쉽지 않다는 인식이 깔려 있다. 기존 제품을 살짝 수정해 버티컬이라고 포장할 수는 있을지 몰라도 알맹이는 '버티컬' 보다는 '호리젠탈'에 가까울 것이란 얘기다.
버티컬 SaaS 회사들이 직면한 도전들은 오히려 레스토랑이나 건설처럼 잠재력이 큰 버티컬 시장을 찾는 것이다. 모든 산업에서 서비스타이탄이나, 토스트 같은 중량급 회사들이 나온다고 보기는 어렵다. 버티컬 SaaS 회사들은 또 보다 적은 산업에 집중하기 때문에 시장에서 선도적인 회사가 되어야 지속 가능성을 확보할 수 있다. CRM이나 HR 분야에선 2위 업체도 충분히 먹고 살 수 있지만 버티컬 SaaS 시장에서 2위는 호리젠탈에 비해 중량감이 떨어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그럼에도 버티컬 SaaS는 초기 단계여서 다양한 분야에서 새로운 플레이어들은 계속 나올 것으로 보인다. 요즘은 레스토랑들이 여러 배달 서비스를 통해 들어오는 주문을 효과적으로 관리할 수 있게 해주는 버티컬 SaaS 스타트업들 움직임도 활발하다.
딜리버렉( Deliverect), 넥스트바이트(NextBite)에 이어 클리킷도 최근 투자를 유치하면서 여러 배달 서비스 앱과 채널들에 걸쳐 주문을 받는 레스토랑들이 이를 효과적으로 관리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버티컬 SaaS애 대한 관심이 점점 고조되고 있다.
출처 : 디지털투데이 (DigitalToday)(http://www.digitaltoday.co.kr) |